영하 19도로 예상되는 곳을 산행해야 한다니 영 마음이 찝찝하다.

'제일 추운 날인데, 이런 날도 산행합니까'라는 물음에

 '저희는 계획대로 움직입니다. 걱정 마시고 준비 잘해 오세요.'

짧은 답변에 자신감이 넘친다. 저녁 나절 막걸리 한잔하면서 어디까지 짐을

꾸려야 할지 막막하다. 그동안 혹한기 산행을 해본 경험의 거의 없음을 깨닫는다.

아이젠-4발짜리 밖에 없다. 스패츠- 5년도 넘은 두껍고 투박하다. 모자, 장갑, 얼굴 가리개

등등. 뭐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오버트라우저 하나만 마음에 든다. 신발과..

어찌 되었든 아침 식사와 간식으로 삼각김밥6개(안사람이 만들었다)와 물, 혹시 몰라

350cc 보온병을 챙긴다. 비상으로 버너 코펠을 챙기다가 그냥 빼논다.-나중에 엄청 후회-

 

밤11시 잠실에서 출발, 차2대가 가니 약 50여명이다. 새삼 놀랐다.

새벽 2시 20분경 죽령 도착 40분에 출발. 허겁지겁 옷입고 짐을 챙긴다. 식수 구할 곳이 없다.

허걱... 스패츠 신고 아이젠 차야 하는지, 아이젠 차고 스패츠 신어야 하는 지 헤깔린다.

아이젠 차는 것 포기..-결국 산에서 신지 못하고 내내 헤매는 빌미를 제공..

제2 연화봉까지 포장도로라 쉽지만 고도는 약600미터를 올라가기에 만만치는 않다.

꽤 빠른 속도, 새삼 놀랐다. 어제 밤에 먹은 막걸리가 후회된다. 벌써 배가 고프다. 거의

쉬지 않고(선두와 후미 거리 조절 할 때만 잠시 쉰다) 소백산 정상에 도착. 6시 40분 정도.

멀리 여명이 밝아온다. 온통 붉은 동녁이 너무 아름답지만 체감온도 거의 영하 30도.

그 이상인것 같다. 얼굴과 머리 온몸의 조그만 틈새도 용납치 않는 강한 바람... 서 있기도 어려운

칼바람 속에서 이번 산행을 쫓아온 것을 후회한다. 너무 준비가 부족했구나. 평상시 반나절 산행에

길들여진 몸과 마음, 준비성이 몸을 거의 극한으로 몰아 넣는다. 준비해온 삼각김밥과 물은 완전한

얼음덩이로 변해 먹거리도 없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야하나...

 

정말 비상용으로 아니 실수로 짱박아둔 생식 봉다리가  다행이 눈에 띄어 물도 없는 상태로

간신히 허기를 때우고 국망봉까지 진출.. 아직도 11키로가 남아있다.(총 거리 24키로) 비상로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눈이 꽤 많은 상태임에도 선두 그룹은 씩씩하게 러셀하면서

길도 잘 찾는다. 상당한 체력과 독도 실력이다.(물론 GPS로 길을 찾는다.) 아침 식사 시간..

아무 것도 없는 나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휘발유 버너 사용이 미숙한 팀에게 도움을 주고

라면 반쪽을 얻어 먹었다. 내가 산행 하면서 이런 일도 있구나... ㅋㅋㅋ

 

그 이후는 각자가 가진 체력과 실력으로 고치령까지 거의 쉬지 않고 달린다.  오후 2시 50분쯤

고치령에 도착하니 같은 산악회 팀이 뜨거운 스프와 라면을 끓여 놓고 반긴다. 목이 말라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많은 반성과 생각을 하게한 산행이다. 고치령에서 주최 측이 준비한

하물차로  약 4키로를 내려와 후미가 올 때까지 차에서 잠시 쉬고 식당으로 이동하여 간단한

국밥으로 요기했다. 물만 2리터는 마셨다. 오른쪽 광대뼈에 동상이 걸렸다. 아차 싶다. 좀더

신경 서야 하는데.. 왼쪽 새끼 발가락도 감각이 없고 부은 느낌이다. 이 나이에는 무엇보다

안정적인 산행을 해야 하는데....

 

 나중에 알았는데 4명은 동상이 심해 서울로 직행하고 6명도 긴급 탈출해서 병원에서 치료받고

왔다고 한다. 산행의 섬세함는 좀 부족한 듯 하지만 전체적으로 수준이 상당하고 체력과 밀어 부치는

힘과 능선을 주파하는 실력은 뛰어났다. 러셀실력도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