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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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마나슬루(8,163m) 산행기록
오희준(노스페이스)
4개월만에 다시 찾은 카투만두 튜리브만 공항에는 촉촉한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봄의 에베레스트 멤버였던 쿡인 두르바(35)와 텐 도르지 셀파(24세)가 공항까지 마중 나와있다. 빌라 에베레스트에 여장을 풀고 본격적인 원정을 준비한다.
이번 원정에는 봄에 에베레스트를 같이 올랐던 형모(관동대 OB,27세)와 쿡인 두루바, 그의 매제인 키친보이 람(31세), 역시 봄에 같이 등정했던 텐 도르지 셀파,이렇게 5명으로 구성된다. 다들 같이 했던 경험들이 있는지라, 대원, 현지인 할 것없이 나이순으로 서열이 결정되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자고 결의를 다진다. 워낙 경험이 많아 이제는 대원들 머리위에서 노는 두루바가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금년은 마나슬루 등정 50주년이 되는 해로 초등국가인 일본이 2팀, 남쪽으로 등반하는 팀을 포함, 프랑스에서 2팀, 내가 퍼미션을 같이 받은 국제대 (한국,체코,호주대원들이 한팀으로 퍼미션을 받음)한팀, 그리고 형모가 포함된 또 다른 연합팀을 포함, 총 6팀이 신청을 하였으나 갑자기 카라반 거점인 포카라로 출발하는 29일 아침, 앙 도르지 형에게서 형모가 포함된 연합팀이 등반을 취소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영석형의 추천으로 갑자기 합류하게 된 바람에 급하게 퍼미션을 받느라
외국 원정대와 조인을 한 것인데 갑자기 그 팀의 계획이 취소가 된 것이다.
워낙 자기 관리에 철저한 친구라 별 부담없이 동행을 했는데 갑자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설상가상, 오늘은 네팔의 최대 축제인 다사이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다. 10여일간의 연휴라 형모의 모든 행정처리를 앙 도르지 형에게 일임하고 트레킹 퍼미션으로 출발한다.
봄, 여름의 등반으로 고소에 부담이 없는 터라 포카라에서 마지막 마을인 사마가운(3,400m)까지 헬기로 바로 날아간다. 9일간의 트레킹 기간을 단 30분만에 올라온다. 마침 트레킹 팀을 인솔해 온 철원형이 카투만두에서 포카라까지의 버스를 전세내줘 편하게 온 길이었다.
이 곳 사마가운은 마나슬루의 마지막 기점으로 쿠르카 전사들로 유명한 구룽족들이 살며 네팔이라는 느낌보다 아직도 티벳 냄새를 더 풍긴다. 이곳에서부터 마나슬루 베이스까지의 짐 운반은 이 마을 사람들 이외에는 할 수 없어 그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없어 내일 올라갈 포터들을 수배한다. 마오이스트들의 근거지인 이곳 마나슬루 지역이라도 이곳 구룽족들의 면면은 여전히 순박하고 순수하다.
일반 포터들의 일당 3배를 받는 포터들 32명과 함께 이른 아침부터 베이스로 출발을 서두른다. 대부분이 여자들이지만 30kg의 짐을 지고 급경사인 길을 힘들이지 않고 오르는 그들을 보며 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그들의 강인한 생활에 존경심이 절로 든다.
새달 첫날에 B.C(4,600m)에 도착하니 일본팀 셀파로 미리 와 있던 오랜 친구인 세랍 장부가 어제 정상 등정후 베이스로 내려온다며 무전으로 나를 찾는다. 한국 라면과 김치가 먹고싶다며. 배가 아플 정도로 부럽지만 진심어린 축하를 하며 기분좋게 베이스를 설치한다. 형모 퍼미션 문제가 남아 있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빠르고 매끄러워 이번 원정의 느낌이 좋다.
이 곳 베이스에는 어제 등정에 성공한 일본팀 2팀과 내가 속한 국제팀,
등정은 못 했지만 시간상 철수를 결정한 프랑스 한팀에 우리가 합류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기존 모든 팀들은 등반이 끝난 상태이고 우리만 남게 된다. 저녁에 내려온 장부와 김치를 곁들인 저녁을 먹으며 루트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지난 여름 가셔브럼에서 촬영에 대해 하도 갈구었더니 이번에는 아예 디카와 비디오 카메라를 직접 챙기고 다닌다. 일취월장이다
정상 사진과 화면을 보면서 자세하게 설명을 들으니 마음이 다소 여유로워 진다. 워낙 눈사태로 악명이 높은지라 내심 걱정했는데 올해는 예년보다는 눈이 적은 상태란다. 이것 역시 호재로 작용할 것 같다.
픽스로프를 설치한 일본팀에 사용에 대해 양해를 구하자 성공한 팀답게 흔쾌히 허락한다. 10월 3일, 5명의 조촐한 라마제를 지내고 형모와 도르지에게 C1으로의 짐수송을 지시한다. 눈이 오는 중이라 슬슬 걱정이 되지만 라마제를 지냈으니 시간을 지체하기가 아쉽다.왕복 7시간이 걸린 운행이다.
남쪽으로 등반하던 프랑스팀 3명이 루트가 어려워 이쪽에서 고소적응하겠다며 베이스로 올라왔는데 2001년 K2를 같이 등반했다며 나를 찾는다.
달랑 텐트 한동만을 가지고 온 폼이 필요한게 많은가 보다. 괜히 살갑게 구는 모습이 그래도 정겹다. 저녁을 대접하고 우리 키친 텐트 사용을 양해해 주었다.
10월 5일, 첫 운행 준비를 하는데 체코팀이 자기들 멤버 2명이 아직까지도 안 내려 왔다며 우리에게 찾아 달라고 한다. 10월 1일에 정상공격을 했다는데 아직도 소식이 안 된단다. 그럼 출발한지 벌써 7일째이다.
어제 일본팀 셀파들 10여명이 모든 캠프마저 철수했는데 미리 조치도 하지않은 그들이 얇밉다. 6시간 운행에 1시간 동안 눈을 다져 3-4인용 텐트 한동으로 캠프1을 설치한다(5,600m)
다음날 크레바스가 발달한 아이스폴 지대를 지나 7시간을 운행, C2까지의 중간 지점인 6,150m지점을 지날 무렵 놀랍게도 체코팀 2명이 내려오고 있다. 바로 그 자리에 텐트를 치고 그들과 같이 우리 텐트에서 막영을 한다. 남자와 여자 한명씩인데 남자의 손가락 동상이 심한것 이외에는 그래도 일주일을 7000m위에서 견딘 그들이 대단하다. 베이스에 무전으로 그들의 안전을 알리니 내일 베이스의 대원들이 올라오겠단다.
이듵날 바로 하산을 시작하지만 크레버스를 건너는 사다리에서 시간을 많이지체한다. C1에서 그들을 인도하고 베이스로 내려오니 사마가운에 있던 정부연락관이 어떻게 알았는지 형모 등반 문제로 항의하러 급히 베이스에 올라왔다. 다행히 조난팀 구조의 명분으로 오히려 고맙다는 얘기를 듣고 무마되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다사이 축제가 끝나는 9일, 카투만두의 앙 도르지형과 통화하였으나 형모 퍼미션 문제는 어렵다는 소식을 듣는다. 정부연락관은 아예 우리와 같이 생할을 한다. 눈이 오락가락하는 날이 연일 계속된다.
10월11일, 도르지와 둘이서 베이스를 출발, 지난 번 쳐 두었던 임시 캠프를 9시간 걸려 올라간다. 다음 날 텐트를 철수하고 캠프2 지점을 지나 캠프3로 진출하려고 하였으나, 7000m이상의 강한 바람으로 캠프2로 쫒겨 내려와 6700m 지점에 캠프2를 설치한다. 13일 강풍을 피해 1시에 출발, 7시에 캠프3 지점에 도달했으나 초속 20여 미터의 강풍으로 다시 캠프2로 내려온다.
하루를 기다렸지만 설상가상 눈까지 내려 베이스로 내려온다.
기온이 날마다 빠르게 떨어 지는게 자꾸 급한 마음이 들지만 어쩌랴,
편히 생각할 수 밖에. 베이스에는 소수의 대원이라 30암페어짜리 베터리를 준비했는데 역부족이다. 밤에 전기를 아끼느라 컴퓨터 사용을 못해 아쉽다.
등반을 못하는 형모도 지루한지 2박 3일 일정으로 마을로 내려가고 베이스에 혼자 있다. 자꾸 부산의 벽래형(동아대O.B,37세)에게 전화로 날씨만 물어본다. 지난 여름 가셔브럼1봉을 같이 올라 간 형은 등반 내내 이곳 날씨를 체크해주고 있다. 눈이 무서운 이곳 마나슬루지만 지금 나에게 최대의 부담은 정상 부위의 바람이다.마치 모든 바람이 형 때문에 불기라도 하는듯이 매일 쪼아대자 19일과 20일 이틀이 바람이 조금 잦아든다는 연락이다.
18일, 이번에도 안되면 10여일을 다시 베이스에서 보내야 하는 절박함에
제발 이틀만 참아 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면서 6,680m의 C2에 도착,
베이스에 무전을 보내니 베이스에는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연락이다.
내일의 날씨는 하늘에 맡기고 1시에 정상공격을 위한 모닝콜을 베이스에 부탁하고 일찍 잠에 들지만 여간 잠이 오지 않는다.
선잠에서 잠을 깨 시계를 보니 벌써 1시 40분이다.
베이스에 급히 무전을 하니 눈이 장난이 아니라 일부러 안 깨웠단다.
C2의 우리 텐트도 반 이상이 눈에 잠겨 이번에도 기회는 아니라는 생각이 스친다. 새벽 2시, 걱정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셀파인 도르지에게 잠이나 자자고 하곤 다시 침낭속으로 몸을 눕힌다. 도르지는 묵묵히 나가더니 텐트 주위의 눈을 치우고 들어와 눕는다.
6시 동이 트면서 도르지가 겨우 잠든 나를 흔들어 깨우면서 정상부위의 날씨가 퍼펙트하다고 유혹한다. 이 친구도 이번에 그냥 내려가기가 억울한가 보다. 한국에 위성전화로 날씨를 다시 확인해 보니 눈보다는 여전히 바람이 문제이고 내일 오후부터 다시 강해진다는 소식이다.
어자피 이번에 내려가면 10여일을 다시 기다려야 하는 부담에 오려히 결정을 쉽게한다. 그래 어자피 내려갈 길 한번 시도나 해보고 가자는 마음에 오늘 C3(7,300m)로 올라가고 내일 정상공격을 시도하고자 결정한다.
10시 30분 C3로 올라갈 장비를 준비하는데 제법 배낭의 무게가 묵직하다.
지난 13일에 한번 올라가 본 길이라 마음을 편하지만 제발 바람만 잦아지기를 바랠 뿐이다. 역시나 12시가 지나면서 다시 바람이 앞을 가로 막는다.
고도 7,000m를 넘기면서 초속 20여 미터의 바람이 안면을 강타한다.
한국에서의 일기예보에 의하면 이번달 초부터 20일 내내 초속 20여 미터의 강풍이 계속되고 있고 오늘부터 내일 오전까지 15m로 잠시 떨어졌다가 내일 오후부터 당분간 다시 강풍이 불 것이라는 예보이다. 달리 대안이 없을 정도의 강풍에 이틀만 참아달라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막상 강풍앞에는 내려가고 싶은 마음 밖에 없다. 지난 13일에도 7,300m까지 올라갔다가 강풍에 꼼짝못하고 쫒겨 내려온 터라 7,000m대의 상황이 짐작이 가지만 텐트라도 데포하자는 심정으로 계속 올라간다.
처음 출발할 때는 4시간 정도로 예상했는데 픽스로프가 눈에 묻히고 심한 강풍으로 18시가 되어서야 겨우 C3에 도착한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바람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천만다행으로 13일에 쳐두었던 프랑스 팀 텐트가 그 바람에도 견디고 있다
사실 프랑스 팀은 철수하면서 텐트 회수를 못하고 우리에게 그 텐트를 사용하라고 주고 간 것인데 그게 남아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었다
다행히 좁은 틈새로 눈이 들어가 굳어진 눈이 오히려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었다. 텐트 바닥이 볼록한 그 텐트안으로 겨우 들어가 바람을 피하게 된 우리 둘은 정리할 정신도 없이 행운이라며 키득거린다.
바닥에 널린 눈을 녹여 겨우 커피 한잔을 마시고 침낭 하나로 서로 껴안고 다리를 뻗는다. 이 행운이 내일까지만 이어지라고 빌면서 선잠에 든다.
다음 날인 20일 새벽 3시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거짓말같이 정상부위에 별이 총총하고 바람이 상큼하다.
서로 자기 주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우기며 셀파와 둘이서 기분좋게 출발 준비를 서두른다. 도르지가 아침으로 준비한 차를 한잔씩 마시고 강풍에 대비한 20m 자일 한동과 카메라, 비박에 대비한 예비건전지, 각종 깃발들, 도르지가 정상에 설치하겠다고 준비한 라마깃발. 무전기등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4시 15분에 텐트를 나선다. 가볍게 부는 바람과 콧등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가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항상 출발이 늦는 도르지를 뒤고하고 먼저 출발하면서 길을 잡지만 금새 따라온 도르지가 먼저 앞질러 간다.
연일 이어진 강풍과 추위로 눈이 바짝 얼어 내 아이젠 소리가 설악에서 빙벽할 때와 같이 맑고 청정하다. 그 경쾌한 소리에 저절로 흥이 나는지 걸음 이 빨라진다. 오버 페이스의 걱정과 함께 오전에 고도를 낮춰야 한다는 급한 마음이 겹쳐 발이 자꾸 엇갈린다. 봄과 여름의 등반으로 고소에 대한 부담감은 없으나 내 체력이 지쳐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오르길 2시간여 후, 드디어 여명이 밝아지며 저 높이 능선이 분명하게 다가온다. 언제나 그렇듯이 해가 어깨위를 비추기 시작하면 어둠이 주는 침묵의 무거움과 동상의 두려움도 같이 사라지는 편안함을 느끼며 오르기 시작한다. 잠시 배낭을 벗고 렌턴을 집어넣으며 앞으로의 시간을 가늠한다
저 능선까지는 앞으로 2시간, 그 위로 정상까지 넉넉잡고도 2시간, 4시간이면 정상에 갈수있다는 희망이 무거워지는 몸을 가볍게 만든다.
줄곧 내 앞에서 리드하던 도르지는 힘이 드는지 속도가 많이 떨어졌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 발이 들어가는 눈의 깊이가 많이 깊어졌다
7700m이 넘으면서 갑자기 눈이 깊이 빠지면서 러셀을 하게 된다
어제 여기에도 눈이 제법 많이 온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전혀 내색하지 않았던 도르지에게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겨우 능선에 도착하니 맞은편 하늘에서 갑자기 맞바람이 얼굴을 강타한다.
아차 하는 마음에 정신을 가다듬고 정면을 보니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릿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내가 서 있는 이곳까지 4개의 봉우리가 릿지를 이루고 있는 형태인 이곳은 저 끝의 봉우리가 정상이다
강한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드나 이때까지라도 참아준 바람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고개를 숙이고 러셀 자국만 따라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저 멀리서 도르지가 힘겹게 지고 온 라마 깃발을 맨 꼭대기에서부터 밑으로 길게 늘어 뜨리고 있다 ‘아! 저기가 정상이구나’라는 느낌과 동시에 급히 품에 넣었던 비디오 카메라를 꺼내 도르지의 행동을 녹화한다.
뾰족한 봉우리로 이루어진 정상부위는 한 사람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면적뿐이라 위에 있는 도르지부터 촬영하고 도르지가 내려온 후 내가 올라가서 깃발들을 찍는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손끝이 얼어오기 시작했지만 이 순간을 만끽한다. 촬영을 마치고 내 품 가장 안에 있던 위성 전화기를 꺼내
한국에게로 전화를 건다. 먼저 영석형에게 전화를 거니 기다렸다는 듯 바로 연결이 된다. 갑자기 형의 목소리를 들으니 목소리가 막혀오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형에게 소식을 전하고, 제주도의 정필형에게 전화를 하니 역시 바로 받는다 바람 소리에 감은 멀리 느껴지지만 짠한 목소리에 고마움을 느낀다. 형들 덕택에 내가 여기에 있다는 얘기는 끝내 하지 않았다.
앞으로 가야 할 산이 많이 남아 있기에.
오희준(노스페이스)
4개월만에 다시 찾은 카투만두 튜리브만 공항에는 촉촉한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봄의 에베레스트 멤버였던 쿡인 두르바(35)와 텐 도르지 셀파(24세)가 공항까지 마중 나와있다. 빌라 에베레스트에 여장을 풀고 본격적인 원정을 준비한다.
이번 원정에는 봄에 에베레스트를 같이 올랐던 형모(관동대 OB,27세)와 쿡인 두루바, 그의 매제인 키친보이 람(31세), 역시 봄에 같이 등정했던 텐 도르지 셀파,이렇게 5명으로 구성된다. 다들 같이 했던 경험들이 있는지라, 대원, 현지인 할 것없이 나이순으로 서열이 결정되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자고 결의를 다진다. 워낙 경험이 많아 이제는 대원들 머리위에서 노는 두루바가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금년은 마나슬루 등정 50주년이 되는 해로 초등국가인 일본이 2팀, 남쪽으로 등반하는 팀을 포함, 프랑스에서 2팀, 내가 퍼미션을 같이 받은 국제대 (한국,체코,호주대원들이 한팀으로 퍼미션을 받음)한팀, 그리고 형모가 포함된 또 다른 연합팀을 포함, 총 6팀이 신청을 하였으나 갑자기 카라반 거점인 포카라로 출발하는 29일 아침, 앙 도르지 형에게서 형모가 포함된 연합팀이 등반을 취소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영석형의 추천으로 갑자기 합류하게 된 바람에 급하게 퍼미션을 받느라
외국 원정대와 조인을 한 것인데 갑자기 그 팀의 계획이 취소가 된 것이다.
워낙 자기 관리에 철저한 친구라 별 부담없이 동행을 했는데 갑자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설상가상, 오늘은 네팔의 최대 축제인 다사이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다. 10여일간의 연휴라 형모의 모든 행정처리를 앙 도르지 형에게 일임하고 트레킹 퍼미션으로 출발한다.
봄, 여름의 등반으로 고소에 부담이 없는 터라 포카라에서 마지막 마을인 사마가운(3,400m)까지 헬기로 바로 날아간다. 9일간의 트레킹 기간을 단 30분만에 올라온다. 마침 트레킹 팀을 인솔해 온 철원형이 카투만두에서 포카라까지의 버스를 전세내줘 편하게 온 길이었다.
이 곳 사마가운은 마나슬루의 마지막 기점으로 쿠르카 전사들로 유명한 구룽족들이 살며 네팔이라는 느낌보다 아직도 티벳 냄새를 더 풍긴다. 이곳에서부터 마나슬루 베이스까지의 짐 운반은 이 마을 사람들 이외에는 할 수 없어 그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없어 내일 올라갈 포터들을 수배한다. 마오이스트들의 근거지인 이곳 마나슬루 지역이라도 이곳 구룽족들의 면면은 여전히 순박하고 순수하다.
일반 포터들의 일당 3배를 받는 포터들 32명과 함께 이른 아침부터 베이스로 출발을 서두른다. 대부분이 여자들이지만 30kg의 짐을 지고 급경사인 길을 힘들이지 않고 오르는 그들을 보며 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그들의 강인한 생활에 존경심이 절로 든다.
새달 첫날에 B.C(4,600m)에 도착하니 일본팀 셀파로 미리 와 있던 오랜 친구인 세랍 장부가 어제 정상 등정후 베이스로 내려온다며 무전으로 나를 찾는다. 한국 라면과 김치가 먹고싶다며. 배가 아플 정도로 부럽지만 진심어린 축하를 하며 기분좋게 베이스를 설치한다. 형모 퍼미션 문제가 남아 있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빠르고 매끄러워 이번 원정의 느낌이 좋다.
이 곳 베이스에는 어제 등정에 성공한 일본팀 2팀과 내가 속한 국제팀,
등정은 못 했지만 시간상 철수를 결정한 프랑스 한팀에 우리가 합류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기존 모든 팀들은 등반이 끝난 상태이고 우리만 남게 된다. 저녁에 내려온 장부와 김치를 곁들인 저녁을 먹으며 루트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지난 여름 가셔브럼에서 촬영에 대해 하도 갈구었더니 이번에는 아예 디카와 비디오 카메라를 직접 챙기고 다닌다. 일취월장이다
정상 사진과 화면을 보면서 자세하게 설명을 들으니 마음이 다소 여유로워 진다. 워낙 눈사태로 악명이 높은지라 내심 걱정했는데 올해는 예년보다는 눈이 적은 상태란다. 이것 역시 호재로 작용할 것 같다.
픽스로프를 설치한 일본팀에 사용에 대해 양해를 구하자 성공한 팀답게 흔쾌히 허락한다. 10월 3일, 5명의 조촐한 라마제를 지내고 형모와 도르지에게 C1으로의 짐수송을 지시한다. 눈이 오는 중이라 슬슬 걱정이 되지만 라마제를 지냈으니 시간을 지체하기가 아쉽다.왕복 7시간이 걸린 운행이다.
남쪽으로 등반하던 프랑스팀 3명이 루트가 어려워 이쪽에서 고소적응하겠다며 베이스로 올라왔는데 2001년 K2를 같이 등반했다며 나를 찾는다.
달랑 텐트 한동만을 가지고 온 폼이 필요한게 많은가 보다. 괜히 살갑게 구는 모습이 그래도 정겹다. 저녁을 대접하고 우리 키친 텐트 사용을 양해해 주었다.
10월 5일, 첫 운행 준비를 하는데 체코팀이 자기들 멤버 2명이 아직까지도 안 내려 왔다며 우리에게 찾아 달라고 한다. 10월 1일에 정상공격을 했다는데 아직도 소식이 안 된단다. 그럼 출발한지 벌써 7일째이다.
어제 일본팀 셀파들 10여명이 모든 캠프마저 철수했는데 미리 조치도 하지않은 그들이 얇밉다. 6시간 운행에 1시간 동안 눈을 다져 3-4인용 텐트 한동으로 캠프1을 설치한다(5,600m)
다음날 크레바스가 발달한 아이스폴 지대를 지나 7시간을 운행, C2까지의 중간 지점인 6,150m지점을 지날 무렵 놀랍게도 체코팀 2명이 내려오고 있다. 바로 그 자리에 텐트를 치고 그들과 같이 우리 텐트에서 막영을 한다. 남자와 여자 한명씩인데 남자의 손가락 동상이 심한것 이외에는 그래도 일주일을 7000m위에서 견딘 그들이 대단하다. 베이스에 무전으로 그들의 안전을 알리니 내일 베이스의 대원들이 올라오겠단다.
이듵날 바로 하산을 시작하지만 크레버스를 건너는 사다리에서 시간을 많이지체한다. C1에서 그들을 인도하고 베이스로 내려오니 사마가운에 있던 정부연락관이 어떻게 알았는지 형모 등반 문제로 항의하러 급히 베이스에 올라왔다. 다행히 조난팀 구조의 명분으로 오히려 고맙다는 얘기를 듣고 무마되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다사이 축제가 끝나는 9일, 카투만두의 앙 도르지형과 통화하였으나 형모 퍼미션 문제는 어렵다는 소식을 듣는다. 정부연락관은 아예 우리와 같이 생할을 한다. 눈이 오락가락하는 날이 연일 계속된다.
10월11일, 도르지와 둘이서 베이스를 출발, 지난 번 쳐 두었던 임시 캠프를 9시간 걸려 올라간다. 다음 날 텐트를 철수하고 캠프2 지점을 지나 캠프3로 진출하려고 하였으나, 7000m이상의 강한 바람으로 캠프2로 쫒겨 내려와 6700m 지점에 캠프2를 설치한다. 13일 강풍을 피해 1시에 출발, 7시에 캠프3 지점에 도달했으나 초속 20여 미터의 강풍으로 다시 캠프2로 내려온다.
하루를 기다렸지만 설상가상 눈까지 내려 베이스로 내려온다.
기온이 날마다 빠르게 떨어 지는게 자꾸 급한 마음이 들지만 어쩌랴,
편히 생각할 수 밖에. 베이스에는 소수의 대원이라 30암페어짜리 베터리를 준비했는데 역부족이다. 밤에 전기를 아끼느라 컴퓨터 사용을 못해 아쉽다.
등반을 못하는 형모도 지루한지 2박 3일 일정으로 마을로 내려가고 베이스에 혼자 있다. 자꾸 부산의 벽래형(동아대O.B,37세)에게 전화로 날씨만 물어본다. 지난 여름 가셔브럼1봉을 같이 올라 간 형은 등반 내내 이곳 날씨를 체크해주고 있다. 눈이 무서운 이곳 마나슬루지만 지금 나에게 최대의 부담은 정상 부위의 바람이다.마치 모든 바람이 형 때문에 불기라도 하는듯이 매일 쪼아대자 19일과 20일 이틀이 바람이 조금 잦아든다는 연락이다.
18일, 이번에도 안되면 10여일을 다시 베이스에서 보내야 하는 절박함에
제발 이틀만 참아 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면서 6,680m의 C2에 도착,
베이스에 무전을 보내니 베이스에는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연락이다.
내일의 날씨는 하늘에 맡기고 1시에 정상공격을 위한 모닝콜을 베이스에 부탁하고 일찍 잠에 들지만 여간 잠이 오지 않는다.
선잠에서 잠을 깨 시계를 보니 벌써 1시 40분이다.
베이스에 급히 무전을 하니 눈이 장난이 아니라 일부러 안 깨웠단다.
C2의 우리 텐트도 반 이상이 눈에 잠겨 이번에도 기회는 아니라는 생각이 스친다. 새벽 2시, 걱정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셀파인 도르지에게 잠이나 자자고 하곤 다시 침낭속으로 몸을 눕힌다. 도르지는 묵묵히 나가더니 텐트 주위의 눈을 치우고 들어와 눕는다.
6시 동이 트면서 도르지가 겨우 잠든 나를 흔들어 깨우면서 정상부위의 날씨가 퍼펙트하다고 유혹한다. 이 친구도 이번에 그냥 내려가기가 억울한가 보다. 한국에 위성전화로 날씨를 다시 확인해 보니 눈보다는 여전히 바람이 문제이고 내일 오후부터 다시 강해진다는 소식이다.
어자피 이번에 내려가면 10여일을 다시 기다려야 하는 부담에 오려히 결정을 쉽게한다. 그래 어자피 내려갈 길 한번 시도나 해보고 가자는 마음에 오늘 C3(7,300m)로 올라가고 내일 정상공격을 시도하고자 결정한다.
10시 30분 C3로 올라갈 장비를 준비하는데 제법 배낭의 무게가 묵직하다.
지난 13일에 한번 올라가 본 길이라 마음을 편하지만 제발 바람만 잦아지기를 바랠 뿐이다. 역시나 12시가 지나면서 다시 바람이 앞을 가로 막는다.
고도 7,000m를 넘기면서 초속 20여 미터의 바람이 안면을 강타한다.
한국에서의 일기예보에 의하면 이번달 초부터 20일 내내 초속 20여 미터의 강풍이 계속되고 있고 오늘부터 내일 오전까지 15m로 잠시 떨어졌다가 내일 오후부터 당분간 다시 강풍이 불 것이라는 예보이다. 달리 대안이 없을 정도의 강풍에 이틀만 참아달라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막상 강풍앞에는 내려가고 싶은 마음 밖에 없다. 지난 13일에도 7,300m까지 올라갔다가 강풍에 꼼짝못하고 쫒겨 내려온 터라 7,000m대의 상황이 짐작이 가지만 텐트라도 데포하자는 심정으로 계속 올라간다.
처음 출발할 때는 4시간 정도로 예상했는데 픽스로프가 눈에 묻히고 심한 강풍으로 18시가 되어서야 겨우 C3에 도착한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바람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천만다행으로 13일에 쳐두었던 프랑스 팀 텐트가 그 바람에도 견디고 있다
사실 프랑스 팀은 철수하면서 텐트 회수를 못하고 우리에게 그 텐트를 사용하라고 주고 간 것인데 그게 남아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었다
다행히 좁은 틈새로 눈이 들어가 굳어진 눈이 오히려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었다. 텐트 바닥이 볼록한 그 텐트안으로 겨우 들어가 바람을 피하게 된 우리 둘은 정리할 정신도 없이 행운이라며 키득거린다.
바닥에 널린 눈을 녹여 겨우 커피 한잔을 마시고 침낭 하나로 서로 껴안고 다리를 뻗는다. 이 행운이 내일까지만 이어지라고 빌면서 선잠에 든다.
다음 날인 20일 새벽 3시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거짓말같이 정상부위에 별이 총총하고 바람이 상큼하다.
서로 자기 주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우기며 셀파와 둘이서 기분좋게 출발 준비를 서두른다. 도르지가 아침으로 준비한 차를 한잔씩 마시고 강풍에 대비한 20m 자일 한동과 카메라, 비박에 대비한 예비건전지, 각종 깃발들, 도르지가 정상에 설치하겠다고 준비한 라마깃발. 무전기등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4시 15분에 텐트를 나선다. 가볍게 부는 바람과 콧등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가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항상 출발이 늦는 도르지를 뒤고하고 먼저 출발하면서 길을 잡지만 금새 따라온 도르지가 먼저 앞질러 간다.
연일 이어진 강풍과 추위로 눈이 바짝 얼어 내 아이젠 소리가 설악에서 빙벽할 때와 같이 맑고 청정하다. 그 경쾌한 소리에 저절로 흥이 나는지 걸음 이 빨라진다. 오버 페이스의 걱정과 함께 오전에 고도를 낮춰야 한다는 급한 마음이 겹쳐 발이 자꾸 엇갈린다. 봄과 여름의 등반으로 고소에 대한 부담감은 없으나 내 체력이 지쳐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오르길 2시간여 후, 드디어 여명이 밝아지며 저 높이 능선이 분명하게 다가온다. 언제나 그렇듯이 해가 어깨위를 비추기 시작하면 어둠이 주는 침묵의 무거움과 동상의 두려움도 같이 사라지는 편안함을 느끼며 오르기 시작한다. 잠시 배낭을 벗고 렌턴을 집어넣으며 앞으로의 시간을 가늠한다
저 능선까지는 앞으로 2시간, 그 위로 정상까지 넉넉잡고도 2시간, 4시간이면 정상에 갈수있다는 희망이 무거워지는 몸을 가볍게 만든다.
줄곧 내 앞에서 리드하던 도르지는 힘이 드는지 속도가 많이 떨어졌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 발이 들어가는 눈의 깊이가 많이 깊어졌다
7700m이 넘으면서 갑자기 눈이 깊이 빠지면서 러셀을 하게 된다
어제 여기에도 눈이 제법 많이 온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전혀 내색하지 않았던 도르지에게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겨우 능선에 도착하니 맞은편 하늘에서 갑자기 맞바람이 얼굴을 강타한다.
아차 하는 마음에 정신을 가다듬고 정면을 보니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릿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내가 서 있는 이곳까지 4개의 봉우리가 릿지를 이루고 있는 형태인 이곳은 저 끝의 봉우리가 정상이다
강한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드나 이때까지라도 참아준 바람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고개를 숙이고 러셀 자국만 따라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저 멀리서 도르지가 힘겹게 지고 온 라마 깃발을 맨 꼭대기에서부터 밑으로 길게 늘어 뜨리고 있다 ‘아! 저기가 정상이구나’라는 느낌과 동시에 급히 품에 넣었던 비디오 카메라를 꺼내 도르지의 행동을 녹화한다.
뾰족한 봉우리로 이루어진 정상부위는 한 사람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면적뿐이라 위에 있는 도르지부터 촬영하고 도르지가 내려온 후 내가 올라가서 깃발들을 찍는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손끝이 얼어오기 시작했지만 이 순간을 만끽한다. 촬영을 마치고 내 품 가장 안에 있던 위성 전화기를 꺼내
한국에게로 전화를 건다. 먼저 영석형에게 전화를 거니 기다렸다는 듯 바로 연결이 된다. 갑자기 형의 목소리를 들으니 목소리가 막혀오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형에게 소식을 전하고, 제주도의 정필형에게 전화를 하니 역시 바로 받는다 바람 소리에 감은 멀리 느껴지지만 짠한 목소리에 고마움을 느낀다. 형들 덕택에 내가 여기에 있다는 얘기는 끝내 하지 않았다.
앞으로 가야 할 산이 많이 남아 있기에.

신오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