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우암에서 등반하였었던 묵으로부터 월초에 전화 연락을 받아 등반 약속을 했으나 며칠전 걸린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 오랜 망설임 끝에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선인봉을 찾아갔다.

푸른샘터 이름도 생각 안나고 막상 제대로 찾아갈 수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석굴암으로부터 들려오는 독경소리와 함께 친숙했었던 샛길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을 되살리며 찾은 진달래길 초입에서 바라보니 주변길마다 등반팀으로 북적였다. 감회가 새로웠다. 선인봉의 바위 옛날 모습 그대로인데 사람들만이 많이 바뀐 것 같았다. 그 동안 등반인구도 많이 늘었기에 전에는 한적하였었던 선인봉도 이젠 코스마다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무리 큰 소리로 불러보아도 대답이 없고 우리 팀이 어느 코스에 붙을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아 일단 가까운 외벽길로 가서 둘러보고 표범길쪽으로 쭈욱 훝어 나갔다. 요델버트레스길 앞에서 도토리묵 한권희, 아침산 하정석 그리고 처음 뵙는 분 1 명을 만났다. 묵과 산을 보니 너무 반가웠고 옛 모습 그대로 변한 것이 전혀 없어 보여 그 동안의 세월이 바로 어제의 일인 양 느껴졌다.

묵이 선등으로 요델버트레스길에 오르고 산이 세컨 빌레이, 처음 뵌 분이 3 번 나는 말번으로 등반 순서를 정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끝마친 관계로 나 혼자 후딱 점심식사를 해치워야만 했다. 점심식사를 거의 다 마칠 무렵 윗쪽에서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다행히 사고는 아닌 것 같았다.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둔탁한 충격음이 환청이 되어 온몸을 휘감아 돌아 공포에 휩싸인 채 전신에서 힘이 쑥 빠져버리는 것같은 짜릿한 전율을 느꼈었다.
 
곧 묵이 내려와 물어보았더니 첫 피치 마지막 구간에서 팔을 뻗어 간신히 홀드를 잡으니 물컹한 것이 잡혔었는데 그렇다고 일단 한 번 잡은 손을 놓을 수도 없고 해서 일단 무작정 올라섰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바로 그 곳에 새집이 있어 새가 알을 품고 있다가 낯선 침입자인 자신의 손을 보고는 깜짝 놀라 날아가는 바람에 자신도 뜻밖이라 너무 놀라서 추락먹을 뻔 했다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고 가뿐 숨을 몰아 쉬었다. 그만큼 이 코스는 한적한 바위길이란 걸 산새가 더 잘 알고 있었나 보다. 잠시후에는 함께 바위에 붙어 있었던 나머지 두 분 다 내려왔다.

묵은 찝찝해서 이 날 더 이상 등반할 기분이 아니었고 산도 그 동안 급격히 떨어진 체력 때문에 선등할 자신이 없었던터라 산이 내려오는 길에 이웃한 코스인 한마음길 톱로핑을 위해 트레바스 구간에 퀵도르를 걸어두어 아쉬운 대로 남은 시간을 톱로핑으로 몸을 풀 수 있었다. 나는 한마음길 한 피치만 등반했었는데도 온몸의 힘이 다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날 땀을 많이 흘려 개운한 느낌과 오랜만의 바위로 오랫동안 안써온 근육을 무리하게 사용하여 온몸이 뻐근한 느낌에서 오는 만족감으로 다시금 내가 바위와 친해지는 것 같은 착각 아닌 느낌이 들었다. 반면 요델버트레스길 전피치를 이 날 등반했었다면 내가 과연 어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신고식 한 번 톡톡히 치룰 뻔했다. 묵이 요델길 등반을 중간 포기해준 것이 나에겐 퍽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총 6 피치로 구성된 요델길은 선인에서 가장 긴 길인데다가 3 피치까지 11.a 10.d 10.c 구간이 있어 만만치 않은 코스인지라 오랜 기간 운동을 안한데다가 감기까지 걸려 컨디션이 영 엉망이었으니 엄청 고생했을 것이 뻔했다.

하산후 간단하지만 푸짐한 닭도리탕으로 뒤풀이의 정을 나누고 이날의 행복한 산행을 마쳤다. 바우와의 만남은 이렇게 해서 또 다시 시작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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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가 너무 조용한 것 같아 사이트에 글을 올리기 위하여 따로 글을 쓰긴 그렇고 해서 지난 주 일기 가운데 하나를 골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