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 근황
서강 옛집(2017. 9 - 10 VOL.419)에 "특집 - 평생가는 우정, 동아리"란 제목으로 우리 산악회 소개 글이 실렸습니다.
서강산악회
“한번 선배는 영원한선배다”
'하늘같은 선배'라는 표현이 구성원 간에 자연스러운 서강 산악회는 1961년 봄 오수철(60 경제), 정동수(60 영문) 동문이 주도해 결성한 교내 1
호 체육 동아리다. 처음에는 하이킹 산행을 주로 했지만, 박정남(61 경제) 동문이 가세하면서 본격적인 암벽 등반에 나셨다.
1962년 7월 18일, 18박 19일 일정으로 하계 설악산 등반에 나선 것을 필두로 산악회는 등정 일지를 쌓기 시작했다.
특히, 1969년 24박 25일 동안 설악산에서 진행한 동계 혹한기 등반을 계기로 본격적인 전문 산악회로 실력 쌓기에 매진했다.
설악산 용아장성 석가봉(1971년)
안산 암봉(1973년)
가야동 천왕문(1973년)
청봉골 1176봉 암벽 초등 및 1~3 코스 개척(1974년)
형제 바위골(토막골) 빙폭 초등(1975년)
범봉 전면 2 코스 개척(1975년)
비선대 선녀봉 초등(1976년)
설악산 토왕성 폭포 빙벽 완등(1985년) 등
서강 산악회 자취는 해마다 확장됐다.
네팔 히말라야 지역 동계 합숙 훈련(1983년)
일본 북알프스 원정(1984년)도 빼놓을 수 없다.
연혁이 쌓이는 동안 성취감과 즐거움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80년 설악산 하계 원정 당시 1383릿지 등반 도중 박용범(80 이과) 재학생이 추락사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산악회는 로욜라 도서관에 도서 기증과 故박용범 추모 도서대 설치를 통해 고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오랫동안 달래야 했다.
산악회 회원은 선후배가 서로 격려하며 성장해온 덕분에, 지금도 동문 137명(미국 LA지부 7명)과 재학생 14명은
서로 끈끈하게 모임을 이어나가고 있다.
요즘은 이희성(69 물리) 산악회 0B 회장을 중심으로 매월 마지막 토요일 정기 산행(연간 12회), 동하계 원정, 1박 2일 연차대회 등 연중 15회 등반을 실시한다.
현재 재학생 동아리 지도교수인 이강오(84 경영) 모교 경제학과 교수가 산악회 출신인 덕분에 선후배 교류가 무척 활발한 것도 특징이다.
해마다4~5월 중 개최히는 춘계 0B/YB 체육대회
11월이면 1박 2일 합동산행을 진행하는 0B/YB 연차대회
12월 송년 모임 등은 연례행사다.
모든 모임에 음주가무가 빠지지 않다 보니 선후배간 유대감은 그야 말로 대단하다.
이미 1987년부터 재학생 춘하추동 원정 동반 산행 및 비용을 0B들이 지원하고 있으며
1996년부터는 지정 장학금으로 산악반 재학생 대장에게 학기당 50만원씩 년 2회 지급해왔다.
2014년부터는 장학금을 100만원으로 인상한 덕분에 현재까지 3000만 원 가량 후원한 셈이다.
박성교(75 경제) 동문은 “산악회 멤버들은 4년 내내 서강대학교를 다닌 게 아니라 서강대학교 산악회를 다녔다고 말할 정도로 산악회에 애정이 강하
다"라며 "북한산이 국립공원 되기 이전 해발 고도 800미터에 달하는 백운대 산장 앞에서 야영하다가 심야에 술이 떨어지자 후배가 득달같이 북한산 입구까지 내달려 잠자던 가게 주인을 깨워 술을 사온 일화는 유명하다“라고 말했다.
1965년경 산악회 회원 남녀 재학생들이 서울 근교로 등산 갔다가 귀가가 늦어지는 바람에 예수회 신부들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에게 커다란 걱정을 쳤던 일화는 초창기 멤버들의 술자리 단골 무용담이다.
1969년부터 1975년까지 매년 봄 교내 등산 대회를 산악회가 주관하고 학생회가 후원하는 형태로 개최해, 참가팀 지정 코스, 팀워크, 장비 준비 상황, 등산복장 등을 채점해 우승팀에게 버너와 코펠을 시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