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지
정말 대박 산행 일지다.
우리 산악회의 원년 맴버이신 오수철(60) 형님께서 쓰신 산행 후기다.
마치 고고학 발굴을 통하여 발견한 보석같은 글이어서 읽는 내가 자부심을 느낄 정도다.
당시에는 설악산 정상 부근에 군인들이 상주했던 모양이다.
수렴동에서도 군인들이 검문을 했었다니....
당시에는 간첩들이 동해안으로 제집 드나들 듯한 모양이다.
하기사 74년도에도 백담사에 군인들이 상주했던 얘기를 여러 형님들한테 듣긴 했지만...
수렴동에 대피소가 아니라 석굴이 있었다니... 대청에서 봉정암 저녁 9시에 도착한 것을 보면 야간 산행의 전통은 이미 이때부터 생겼나 보다.ㅠㅠ
오수철(60) 형님이 이 글을 다시 읽는다면 어떤 느낌이 드실지 상상히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각설하고
이 기행문은 서강타임즈에 실린 것으로 한종우(81) 회원이 발굴(?)하여 조그많게 촬영되어 보이지도 않는 신문기사를 암호 해독하듯이 한글자 한글자 독해하여 텍스트화 하는 수고로음이 있었다.
한종우(81) 회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1963년 9월 21일 서강타임스 제 27호
보고 기행문
설악산 등반기
오수철(경제과 4년)
강렬한 폭염 아래 계곡과 험준한 비탈길을 오르내리면서 우리들 서강산악반 하기설악산 등반 일행 8명의 대원은 한반도 중축 태백의 최고봉 설악의 대청봉을 찾아들었다. 이번 등반의 목적은 단순히 어떤 고산의 정복을 통한 쾌감을 얻고자함이 아니라 평소에 기른 인내와 협동의 결실을 보다 더 굳건히 하고자하는데 있는 것이었다.
물론 부수적인 활동으로 학술조사나 기후조건 및 산악 식량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산악정신의 배양이 주요인 것이다. 금번 등반에선 무엇보다도 입산예정일에 간첩의 색출작전으로 인하여 우리들 일행은 입산해제시 까지 기다려야만했다. 그러나 꾸준히 기다린 보람이 있어 다행히도 5일만에 간첩이 사살됨으로써 우리는 입산을 하게되었다. 그 동안 소비한 식량과 시일관계 등으로 우리는 원래 계획을 변경하여 4박5일의 예정으로 7월 27일 드디어 등반의 도정에 오르게 되었다.
7월 27일 맑음
아침 일찍 룩샥의 무거움도 잊은 채 천불동계곡으로 찾아들었다. 죽음의 천불동계곡이라지만 그건 미안한 소리다. 그와는 정반대인 것 같았다. 넓은 반석 위를 혹은 옥석 같은 미끄러운 바위 위를 흐르는 물은 마치 수정 같이 맑기만 하다. 눈으로 들여다보면 발목 밖에 인될 것 같아도 막상 발을 짚어보면 몸이 반 이상이나 잠긴다. 맑은 계류를 양편으로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말없이 서있는 기암절벽들이 또는 무성한 이름 모를 잡목과 거대한 수목들이 협곡 천불동을 감싸준다. 꼬불꼬불한 천불동계곡은 갈레를 이루면서 파고든다. 이젠 어디로 들어왔는지 입구를 분간할 수도 없다. 우리는 몇 차례 쉬면서 등반을 계속했다.
이제 이곳은 완연히 신의 영역이다. 이들 묘미의 극치를 감상하는 가운데 우리는 이제까지 초조했던 마음과 산에 걸머진 무거운 룩샥의 고통과 피로을 잊고서 창랑한 신천지에 찾아 들었다. 때로는 절벽 위로 로프를 사용하여 기어오르고 때로는 이끼 낀 바위를 더듬어가며 때로는 골을 건너면서 우리는 한사람의 낙오자 없이 C-1 염주폭에 도착했다.
캠프 첫 밤을 맞이하여 캠프파이어를 가졌다. 향나무를 주어다가 피웠더니 향내가 주위에 그윽하다. 타오르는 불길 속을 뚫고서 마주보는 시선들은 피곤해 보였다. 밤이 깊어가자 불길도 죽어간다. 대원들은 하나씩 둘씩 잠이 들었다. 너무나도 적막한 밤이다. 유성이 소리 없이 줄을 긋는다.
7월 28일 흐림
희뿌연 새벽 속에서 눈을 떴다. 염주폭의 물소리가 한층 요란스럽다. 어제 밤까지도 맑던 하늘이 흐리다. 12시가 경에야 모든 준비를 끝내고 출발에 임 하였다.이제부터는 계곡을 빠져나와 산비탈에 오른다. 모두들 수통에 물을 담고서 무성한 잡목사이를 파고들었다. 수목사이를 헤쳐 나가자니 무거운 룩샥이 더 한층 거추장스럽다. 나뭇가지와 칡넝쿨을 잡아가며 묵묵한 대열이 전진할 뿐이었다. 어느 곳인지 알 수도 없다. 한발 한발 나아간다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호흡이 점점 가빠진다. 이마에 흐르는 구슬같은 땀방울이 우리의 시야를 흐릿하게 연거푸 흐른다. 이젠 지루함 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걸어야만 한다.
드디어 화채봉 능선에 올라섰다. 지금까지의 지루함도 과로도 잊은 채 또 다시 대자연의 아름다운 신비경 속에 도취되어 버렸다. 발아래 수없이 나열된 천불동의 영봉들이 아니 외설악의 전경이 문자 그대로 일목요연하다. 이 아름다운 대자연의 구도를 어느 위대한 예술가라도 이만큼 배치할 수는 없으리라. 보라! 태고의 신비를 안은 채 장엄한 설악의 영봉 대청이 흰구름들을 뚫고서 말없이 내려다 보고 있지 않은가? 무수한 영겁 속에서 이 영봉 대청봉은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서 말없이 서 있으리라.
휴식과 함께 점심을 마친 우리는 드디어 1,708m 대청봉을 향해 건각을 내딛었다. 그러나 이것이 대자연의 위력인지 삽시간에 짙은 안개와 함께 사방이 하얗다. 점점 기온이 낮아진다. 너무나도 변화가 심한 산악기후이다. 얼마 안가서 한 방울 두 방울 빗방울이 얼굴에 떨어진다. 급기야는 짓궂게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모두 우장을 하였다. 무거운 룩샥에 우장을 하니 거추장 스러운데다 신발이 젖고 양말이 젖어들고 또 바지가랑이에 물이 젖어 올라오니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나 되는 것 같다.오후 늦게 기진맥진한 전 대원은 드디어 정상에 올라섰다. 사방이 하얗게 안개와 구름의 바다일 뿐이다.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감회가 느껴진다. 군초소에서 검문을 마치고 페난트와 교기를 꽂았다. 기온은 영하였다. 비 맞은 전 대원은 와달 와들 떨고 있었다. 기념 촬영을 끝낸 후 우리는 이곳에 C-2를 정하려고 하였으나 추위 때문에 봉정암을 찾아 걸음을 재촉하였다. 벌써 날은 어두웠다. 일행은 어둠을 뚫고 50도 내지 60도의 급경사를 뛰어 내렸다. 무난히 봉정암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9시였다. 우선 배고픔에 마루에 걸터앉은 채로 떨어가면서 밥을 먹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7월 29일 흐림
추워서 인지 눈을 떴다. 사방은 고요한데 안개만 자욱하다. 어제 밤비 속을 뚫고 강행군을 한 탓인지 모두들 쓰러진 채 일어날 줄 모른다. 룩색 워커등 모든 것이 물에 젖어 있었다. 따뜻한 아침밥을 먹고 나니 추위가 가신다. C-2를 기점으로 대원은 분리되었다. 임교수와 K군 H군은 먼저 하산하기로 하여 나무꾼과 함께 오세암을 지나 마등령을 거쳐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잠시 후 나머지 일행 5명도 내설악 깊이 접어들었다. 내설악은 어딘지 모르게 더 정숙하고 고요했다. 물빛도 외설악과 달랐다.
노란 물빛이 한층 더 온화한 기운을 자아낸다. 계곡이 점점 넓어진다. 대원이 줄어든 탓인지 행동이 가볍고 빨랐다. 백운동 입구를 지나 마치 운동장과도 같은 넓은 바위 위를 거쳐 수렴동에 이르러 우리는 C-3를 정하였다. 마치 석공의 손을 거친 듯 널찍하고도 탄탄한 석굴이었다. 아직 해는 많이 남아 있었다. 모두들 양말과 셔츠를 빨아 널었다. 마치 난민의 생활 같아 보였다.
7월 30일 맑음
벌써 행동 4일째다. 어찌 보면 입산한지 한 달이 넘는 것 같기도 했다.오늘 예정 코스는 짧아 느즈막히 떠났다. 한 모퉁이 돌아서니 군 검문소가 있었다. 검문을 마치고 가야동으로 접어들었다. 이 곳은 등반대가 잘 찾지 않은 탓인지 더욱 정숙하다. 한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신경지가 전개된다. 마치 병풍을 두른 듯이 깍아 세운 암벽이며 기이한 형상을 한 기암들이 하늘을 꾀어 뚫을 듯 서서있다. 천불동계곡보다 넓어서 좋다. 오촌폭에서 한시간 가량 절벽을 기어오르느라고 수고했다. 어둠이 깃들 녁에 우리는 오세암 C-4에 도착했다. 두 번이나 불타버렸다는 쓸쓸한 절 옆에 약초 캐는 자들이 사용하는 조그만 오막살이에 짐을 풀어 방에 들어서니 풀냄새가 코를 찌른다. 양철 문이 바람에 삐걱거린다. 주위는 어둠에 깃든 채 바람소리가 더 한층 음산한 기운을 자아낸다. 이 어둠 속을 뚫고 사람의 외침소리가 들린다. 전 대원이 놀랐다. 얼마 후 우리는 불빛과 소리로서 그들을 맞았다. 나타난 것은 길잃은 5명의 고등학생들 이었다. 그들 일행이 나타나니 이젠 대가족이라서 그런지 음산한 분위기가 가신 것 같다. 사회생활의 이점을 여기서 엿볼 수 있었다.
7월 31일 맑음
오늘로서 산 생활도 마친다. 산 생활이 끝나기 때문인지 모두들 활기를 띈 것 같다. 무엇인지 모르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오세암을 뒤로하고 일찍 나섰다. 한 시간 만에 마등령에 올라섰다. 저 멀리 동해바다가 내려다 보인다.그리고 신흥사 입구까지의 길이 좁다랗고 구불구불 그려져 있다. 왼편에는 공룡능의 연봉들이 흡사 공룡의 등과 같이 뾰족뾰족 솟아 있다. 내려오는 길에 바위틈과 절벽 위에 핀 에델바이스를 꺾었다. 다시 지루함과 급경사의 마등령을 달리다 두 시간 만에 내려왔다. 너무 빠른 속도라 우리 자신도 이상했다.
그 어떤 아쉬움 때문인 그 동안에 보낸 순간순간이 너무도 짧은 것 같았다. 드디어 베이스캠프가 눈앞에 보인다. 모두가 기쁨과 안도의 환성 속에서 우리는 베이스캠프로 뛰어드니 4박 5일의 짧고도 긴 등반의 여정도 끝난 것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