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여러 선후배님들께 안부소식 전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그동안 무심했던 걸 반성하고 가끔씩이라도 종종 방문하여 인사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작년 가을에 심사숙고 끝에 귀농을 결심하여 비장한 마음으로 홀로 고향에 마련해둔 거처(과수원 관리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FTA 대세속에서 황폐해진 농촌이 장기적으로 더욱 피폐해질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인지라 아직도 젊은(?) 나이에 너무 일찍 은둔(?)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와 걱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궁핍한 시골에 묻혀 안빈낙도를 단순히 즐기고자만 한 것은 아닙니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농약과 화학비료의 지나친 오남용으로 인한 생태환경의 피해를 줄이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해보자. 그것은 말로서가 아닌 몸소 실천함으로서 그리고 농업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어 죄송합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올해 기존 과수원을 무농약/유기농으로 바로 전환했습니다. 이리저리 책자나 자료도 찾아보고 전문가들을 두루 찾아 뵙고 가르침도 받아가면서 하나씩 현장에서 부딪치며 문제해결해나가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문외한 탓인지 체계적인 무농약 재배를 위한 구체적인 길라잡이 책자 하나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단편적인 지식만 알려주는 자료를 여기저기서  구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전문가들로부터 가르침을 구하면 만나는 분들마다 다른 방법을 설명해주십니다. 뭐가뭔지 도통 이해도 안되고 머리속만 뒤죽박죽 어지러웠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새운 날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군대시절 삽자루 한 두 번 쥐어본 것이 흙을 만져본 전부이고 농사에 대하여 배운 것이라곤 전혀 없고 경험조차 한 번 없는 완전 백지상태인 내가 무슨 깡으로 농사를 해보겠다고 덤벼든 것인지. 그것도 무농약으로...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였다가 실패를 맛보았다는 이야기를 여러사람들로부터 들어 잘 알고 있었던 터라 불안이 엄습해오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움츠러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마다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건지 모를 나의 그토록 무모한 자신감 때문에 내 자신이 한없이 한심하게 느껴지기까지도 했답니다.

 

제 과수원을 보았던 많은 주변 사람들이 던지는 핀잔과 잔소리, 비난을 들을 수록 나의 굴하지 않던 강한 의욕도 점차 꺾여져갔습니다. 우거진 잡초와 병충해로 시든 나뭇잎과 병든 나무가지 그리고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에다가 심지어는 완전히 말라 죽어버리리는 나무들이 하나 둘 늘어남에 따라 당황스럽기도 했고 대처방법을 몰라 전전긍긍 속만 태운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좌절감이 밀려오고 도피하고픈 욕망이 일 때마다 마음을 다스리며 갈등했습니다.

 

괴롭고 힘든 긴긴 여름을 보내고 가을 즈음에 이르러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조그만 밀감열매가 대롱대롱 달려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점점 심해져갔던 병충해 피해도 어느정도 가라앉고 정체되었던 것입니다. 첫 해 결실의 작은 소망이 생긴겁니다.

 

초겨울에 이르러 과일은 오렌지 칼라로 색을 바꾸며 알차게 익기 시작했고 12월 5일부터 첫 수확을 시작하였습니다. 일단은 1 차년도 수확에 성공한 것입니다.

 

시식후 들은 평이 '맛은 좋은데', '거무튀튀 못생겼어도 진지한 맛과 향이 깊어요'

 

그후로 매일 밀감 따고 나르고 정리하고 판촉하고 포장하고 택배발송하고 자재준비하고, 눈올 땐 눈털고 하루 24 시간이 짧아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반가운 소식은 분당에 있는 한 친환경 매장으로부터 샘플오더를 받았습니다. 조만간 유통채널도 여럿 확보되리라 믿으며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잼없는 지루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서없이 지루하게 늘어놓음으로써 눈을 피곤하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다음에 시간 나면 초보 농부로서 겪고 느꼈던 에피소드를 간단히 올릴께요!)